- “건물은 스마트해지는데 정책은 멈춰있다”

국내 건물관리 산업이 디지털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AI 기반 시설관리, 에너지 절감 시스템, 스마트 통합관제, 데이터 기반 유지보수 등 건물관리 산업 역시 기술 중심 산업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 정책은 여전히 이 산업을 ‘부동산업’이라는 낡은 틀 안에 묶어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체계는 산업분류코드상 부동산업(68~)을 지원 제외 업종으로 규정하고 있어, 건물관리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중기부는 ‘2026년도 중소기업 정책자금 융자계획’에서 융자 제외 업종으로 부동산업을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건물관리업 역시 한국표준산업분류(KSIC)상 ‘68’로 시작하는 부동산업 범주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결국 스마트 건물관리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AI 기반 유지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기업들도 업종 코드만으로 정책금융 지원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다.
이는 단순한 행정 분류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건물관리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짓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투기와 관리가 같은 산업인가” 정부가 부동산 투기 억제를 정책 기조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중기부 역시 융자 제외 업종 기준에서 “부동산 투기 등 국민 정서상 지원이 부적절한 업종”을 제외 사유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관리 산업은 투기와 거리가 멀다. 건물관리업은 공동주택, 오피스빌딩, 지식산업센터, 상업시설 등의 시설 운영과 유지관리, 안전관리, 에너지 효율화, 환경 관리 등을 수행하는 산업이다. 최근에는 단순 청소·경비 중심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 운영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건물관리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영역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 AI 기반 시설 고장 예측 시스템
- 에너지 절감 자동제어 기술
- IoT 센서를 활용한 통합관제
- 디지털 유지보수 플랫폼
- 스마트 주차·출입 시스템
- ESG 기반 탄소절감 운영 솔루션
이미 해외에서는 ‘프롭테크(Property Tech)’와 ‘스마트 FM(Facility Management)’ 산업이 미래 유망 산업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글로벌 투자 역시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산업분류 코드 하나 때문에 혁신기업조차 “부동산업”으로 묶여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는 현실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가 산업의 본질보다 산업코드를 우선하는 행정 편의주의”라고 비판한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형평성이다. 중기부 정책자금은 제조업의 스마트화와 기술혁신에는 대규모 지원을 하고 있다.
실제로 정책자금 계획에는 ‘제조현장 스마트화’, ‘혁신성장지원’, ‘Net-Zero 유망기업’ 등이 핵심 지원 분야로 포함돼 있다.
스마트공장 도입 기업에는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이차보전까지 지원된다.
반면 건물관리 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정책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한 건물관리 스타트업이 AI 기반 시설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더라도 산업코드가 ‘68’로 분류되면 정책금융 접근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결국 산업 혁신 의지를 꺾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건물관리 산업은 중소기업 비중이 절대적이다. 대기업보다 중소 규모 사업자가 대부분이며, 디지털 전환을 위한 초기 투자 여력이 부족한 기업도 많다.정책금융은 원래 이런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기술력보다 산업분류 코드가 우선되고 있다.
특히 ESG 경영과 탄소중립 흐름이 확대되면서 건물의 에너지 효율과 유지관리 기술은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분야가 되고 있다. 국내 건물 에너지 소비는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노후 건축물 증가 역시 유지관리 산업의 중요성을 키우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건물관리 산업을 단순 서비스업이 아니라 스마트시티·에너지·디지털 산업과 연계해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산업분류 체계에 묶여 있다.업계에서는 “제조업 공장의 스마트화만 산업 혁신이 아니라 건물 운영의 스마트화 역시 국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실제로 최근 건물관리 기업들은 AI·IoT·클라우드·빅데이터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그러나 정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원 제외”보다 세분화된 기준 필요
전문가들은 현재의 일괄적 제외 방식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개발·투기 목적 산업과 시설 유지관리·운영 산업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술개발 중심 기업이나 스마트 관리 솔루션 기업까지 동일하게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개선안을 요구하고 있다.
- 건물관리업의 산업분류 세분화
- 프롭테크·스마트FM 분야 별도 지원체계 마련
- 디지털 건물관리 기업의 정책자금 예외 인정
- ESG·탄소중립 관련 건물관리 기술 지원 확대
- AI 기반 시설관리 솔루션 기업 지원 허용
실제로 중기부 정책자금은 기술사업화 기업과 스마트공장 기업에 대해 예외적 지원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물관리 산업 역시 기술성과 혁신성을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단순한 자금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건물관리 산업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문제다.
건물관리 산업은 국민 생활과 직결된 필수 산업이다. 공동주택과 오피스, 상업시설, 공공건축물의 안전과 운영을 책임진다. 특히 초고령 사회와 기후위기 시대에는 유지관리 산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 정책은 여전히 이 산업을 “부동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 제한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정책자금이 부동산 투기 자금으로 악용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투기 목적 산업과 첨단 건물관리 산업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산업은 변하고 있다. 이제 정책도 변해야 한다.
건물관리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기준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결국 피해는 산업 전체의 경쟁력 약화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부동산업”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다양한 산업 현실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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